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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만 50명… 난 행복한 ´처녀 엄마´

윤형준 기자 news@vanchosun.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

   

최종수정 : 2016-02-03 10:11

[버려진 아이들 30년간 돌본 ´서울 SOS 마을´ 代母 정순희씨]

“자립할 때까지 곁에 있어줘… 그 아이들이 낳은 손주가 12명
명절도 ´자식´들과 보내느라 집에도 못가고 결혼도 안했죠”

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´서울 SOS 어린이 마을´. 세 살 꼬마 민호(가명)가 자기 키보다 높은 책장 위를 가리키며 “엄마, 저거”라고 칭얼댔다. 그러자 정순희(여·58)씨가 책장 위에서 민호의 색칠공부 책을 꺼내줬다. 민호가 놀아달라며 손을 끌어당기자 정씨는 “이따가 누나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놀자”고 달랬다. 정씨는 고등학생 딸 6명, 중학생 딸 1명, 세 살 민호까지 8명의 자식과 한집에 산다.

서울 SOS 어린이 마을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주는 아동복지단체다. 1982년 신월동에서 문을 연 이후 35년째 집 열 채가 조그만 마을을 이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왔다. 지금은 비어 있는 두 곳을 제외한 여덟 채에서 7~8명씩의 아이가 8명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. 정씨처럼 배가 아닌 가슴으로 자식을 낳은 엄마들이다.


<정순희(오른쪽)씨가 1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´서울 SOS 어린이마을´에서 색칠 놀이를 하는 남자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. 정씨는 30년 동안 이곳에서 일하면서 ´버려진 아이들´ 50여명의 엄마 역할을 했다. /박상훈 기자 >

이곳 엄마 8명은 모두 ´평생 결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겠다´는 서약을 하고 들어왔다. 엄마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정씨는 1986년부터 30년 동안 아이들을 보살펴왔다.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 세상으로 내보낸 자식만 50명이다. 그 자식들이 이제 아이를 낳아 명절이나 어버이날 때면 정씨를 할머니라고 부르며 찾아온다. 손주도 12명이 생겼다.

정씨는 울산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. 원래 꿈은 수녀(修女)였다. 성직자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1980년대 중반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 게 ´처녀 엄마´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됐다. “사회복지연수원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 교육을 받을 때였어요. 당시 SOS 어린이 마을을 들른 적이 있었는데, ´아이들을 일반 가정과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 키우자´ 는 취지에 공감해 수녀 대신 이곳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했어요.”

하지만 친부모에게 상처를 입고 이곳까지 온 아이들은 걸핏하면 학교에서 싸웠고, 가출도 잦았다. 정씨는 “아이들이 사고를 쳐 낮에는 학교에, 밤에는 경찰서에 불려가기 일쑤였다”며 “’친엄마가 아니라 저런다’는 소리를 들을까 봐 밖에선 혼낼 수도 없었고, 아이들은 그걸 알고 말을 더 안 들어 밖에 나가 많이 울었다”고 했다.

10여 년 전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 여자아이는 정씨에게 “우리 같은 문제아를 왜 키우느냐. 난 죽을 때까지 사고만 칠 거니까 힘들면 버리라”고까지 했다. 정씨는 “엄마는 네가 아무리 사고를 쳐도 어떻게든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킬 거다”며 물러서지 않았다. 사고만 치겠다던 이 아이는 이제 자식을 둔 엄마가 됐다. 잊을 만하면 정씨에게 전화해 “엄마는 대체 나를 어떻게 키웠어?”라며 신기해한다고 한다.

정씨가 사는 9호 집엔 아들 정모(27)씨가 대학 시절 직접 만든 감사패가 놓여 있다. 이 패엔 “사랑으로 저를 키우신 것보다 더 큰 업적은 없습니다. 어머니 사랑합니다”라고 쓰여 있다.

다가오는 설 명절에도 정씨는 집을 지킨다. 명절이 돼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, 세상으로 내보낸 ´품 밖의 자식´들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. 이 때문에 정씨는 지난 30년간 명절이라고 ´친정´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. 정씨는 오는 2018년이면 ´엄마´ 자리에서 은퇴한다. 엄마와 자녀의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는 것도 양육에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SOS 어린이 마을 측이 60세를 정년(停年)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. 정씨는 “이곳을 떠나더라도 항상 아이들의 엄마로 남을 것”이라고 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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